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감상은 두껍다!였습니다. 한 300페이지 정도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무려 600여페이지!(정확히는 595페이지지만...)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읽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읽기 시작하니 의외로 빨리 술술 읽히더군요.
마리아비틀은 도쿄발 모리오카행 신칸센 '하야테'를 배경으로 5명의 전·현직 킬러들의 사정과 대립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직 킬러인 알콜중독자 경비원 기무라, 레몬과 밀감으로 불리는 킬러 듀오 과일, 불운을 몰고 다니는 무당벌레 나나오, 마지막으로 우등생을 가장한 악당 왕자(오우지)의 다섯 명이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트렁크 하나를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칩니다. 물론 그 트렁크가 목적인 것은 과일과 나나오뿐이지만 말이죠.
처음 목차를 보고 '기무라, 과일, 무당벌레, 왕자...' 이런 식으로 반복이 되어 있어서 의아해 했지만 그것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한 것이고 그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5명의 이야기를 각각의 시점에서 풀어나가면서 결국엔 하나로 귀결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킬러라는 소재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곰곰히 뜯어보면 내용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더군요.
외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모순과 정의롭지 않은 부조리한 사회, 그 안에서 비틀어지고 어딘가 한군데 이상이 생겨버린 모습들은 무겁기 그지 없습니다만 그것을 유쾌함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가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됐습니다.
강한 개성과 배경 이야기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마리아비틀입니다만, 오직 한명, 왕자라는 캐릭터만큼은 읽는 내내 불쾌한 느낌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같은 인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계산대로 움직이는 장기말로 보고, 또 그 예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조소하는 그 모습은 작가가 가장 신경을 써서 그린 캐릭터가 아닐까 싶더군요.
그 어린 중학생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폐부를 찌르고 애써 외면해왔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에서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왕자의 말마따나 나이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어른이 된 탓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야테'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왕자의 모습에 어느샌가 그의 자신만만한 콧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어하게 된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전 순문학이건 장르문학이건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습니다. '국내 문학도 읽지 않는데 일본 것은 읽어서 뭐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이사카 고타로라는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봤고 별 기대하지 않고 책을 펼쳤습니다만 책을 덮고 나서는 가끔씩은 이런 책도 읽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순문학과, 판타지와 SF를 제외한 장르소설은 여전히 취향이 아니지만 말이죠.